본문 바로가기

교양 독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생각은 ‘작가’로서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성장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틀즈나 밥 딜런도 센세이셔널 했지만 그 당시에 욕을 굉장히 많이 먹었었다. 어떤 것이 오리지널리티냐에 대한 하루키의 필요요소는 3가지다. 첫째 다른 표현자와는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있다. 둘째 그 스타일을 스스로 버전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고 일반화 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참 중요하다. 두번째 세번째 조건은 시간이 지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검증할 수 없다. 물론 세번째 조건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하루키는 자신을 굳이 따지자면 링 위에 오래 남아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쉽지않은 일이다. 어떤 분야에서 참신한 신예가 나오고 ‘와아’ 하는 탄성을 일으키지만 어느샌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돌이켜보니 무심코 ‘아 그런 사람도 있었지’하고 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지속력이나 스스로 발전(하루키는 자기 혁신력이라고 표현했다)해 나가지 않고서야 이런 표준이 될 수 없다. 어린시절에는 하나의 허들을 넘으면 인생의 일부가 클리어 된 것처럼(나는 인생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렇지만) 여겼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 아닐까 싶다. 나 스스로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퍼포먼스를 이루고 그 안에서 발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소위 꼰대라고 하는 사람들은 오리지널리티가 되기에는 두번째 요소가 부족한것이 아닐까 한다. 시간이 지나서 일반화 되었고 이뤄놓은 것들이 있지만 스스로 버전업 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죽을때까지 내 스스로의 어떤 면을 오리지널리티로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계속 발전시켜야 할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왠지 규칙성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아저씨지만 하루키는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본인만의 기술이 있다.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일을 맡지 않는다. 가끔 번역이나 예전에 생계를 위해서 일을 했던 적이 있지만, 글쓰기라기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일들이라고 한다. 요컨데 글쓰기와 관련된 뇌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최대한 꾸준한 템포를 유지시키려고 한다. 보통 하루에 200자 원고지 2장을 쓴다는 규칙을 세웠었다고 한다.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날에도, 더 덜 쓸 것 같은 날에도.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꽤나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오버트레이닝도 안되고 적당하게 뇌에 자극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스스로 마음속에 운동과 일과 공부를 별개 선상에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훈련의 기본은 다들 똑같은데 말이다. 그렇게 글을 다 쓰고 나면, 몇번의 퇴고를 거치고 마지막으로 완전히 잊혀질 때까지 가만히 둔다. 일종의 디로딩과 같다. 하루키는 이것을 건물을 지을 때 ‘양생’과정에 빗댄다.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 중요한 과정인 것 같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함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양생과정이 확실하지 않으면 덜 말라서 무른 것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는 제 3자의 의견을 듣고 수정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언가 비판을 들으면 (마음에 들든 들지않든) 수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비판이 맞다고 느끼면 비판대로 고치고, 동의할 수 없는 비판인 경우에는 방향성이 다르더라도 어쨌든 비판받은 부분을 고칩니다. 어떤 부분에 비판이 있을 때 지적의 방향성은 어찌됐건 간에 뭔가 문제가 내포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치고 나면 어떤식으로 든 더 나아진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왜냐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잘 됐다’라는 일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잘 했다’ ‘완벽하다’고 느껴도 거기에는 항상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퇴고 단계에서는 최대한 자부심이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차가운 머리로 작업해야하는 것 이라고 한다. 참으로 일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시켜도 좋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개발자로써 코드를 짤 때도 아 이건 정말 기깔나 했던 것도 돌아보면 별로였던 경우가 많았고 그때의 성취가 사실은 별것이 아니었음을 언제나 개선의 여지가 있었음을 항상 느끼며 산다. 하루키는 비평의 가장 긍정적인 면은 ‘뜯어고친다는 행위 그 자체’를 유발하는 점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면서 좋은 점은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이번에는 이런것에 도전해 보자’ 하고 작업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기술적인 것(아마 화법이라던지, 문체라던지 이런게 아닐까?) 에 한가지 이상은 과제를 정하고 달성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는 느낌을 받는게 재밌다고 한다. 글쓰는 ‘기술’ 이라는 관점에서 굉장히 좋은 접근이라고 느낀다. 개발자로써도 프로젝트를 하든 일을 하든지 간에, ‘노동’이 안 되도록 ‘이번에는 이 기술을 좀 적용해볼까’ 하는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항상 베스트 퍼포먼스를 장담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성장해 나가야 예순, 아흔이 되더라도 발전과 혁신이 가능하지 않을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