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 서머싯 몸
돈과 가정을 가진 이사벨
명예를 가진 앨리엇
삶의 목적을 찾은 래리
사랑을 일궈낸 그레이
여성으로서 성공한 예술가가 된 수잔
죽음을 얻은 소피
작가가 말한대로 모두가 해피엔딩이다.
보면서 헤르만 헤세의 싯타르타가 떠올랐다.
다만 싯타르타에서는 싯타르타만이 주인공이었다면 면도날에서는 래리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읽으면서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캐나다에 있으면서 홈리스나 약쟁이들을 보면 그건 저자들의 잘못이다. 라고 생각해왔었기 때문에
이사벨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든 삶이 무너질 정도의 위기가 온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 죄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예스라고 생각했다.
나는 작가가 대공황이후에 삶이 무너져버린 사람들을 보면서 이 글을 썼고, 나와는 다른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래리의 목소리를 통해서 덤덤하게 그것을 풀어내기 때문에 중립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덮은 지금도 내 대답은 예스다.
다만, 무너져 버린 삶에 대해서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자신을 학대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연민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나라면 소설속의 어떤 인물처럼 살고 싶은가 이다.
물론 한가지를 뽑기는 어렵겠다. 나는 책을 읽을때마다 캐릭터의 어떤 면모들이 나에게 잠재돼 있는 것을 느낀다.
망가지고 자신을 나락까지 몰아넣으려는 소피,
성공하기 위해서 자존심이나 꿈을 버릴 수 있는 수잔과 앨리엇,
그러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얻으려는 래리,
언제나 순종하고 역할에 충실하려는 그레이 모두가 나의 안에 들어있는 나의 캐릭터이다.
살아가면서, 한권씩 읽어나가는 책이 많아지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참 자주 바뀐다.
그럴때마다 정답은 없구나 하는 것도 매번 느끼는 것 같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it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it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t so.
정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항상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지 의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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